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샌델 (문단 편집) === 기존 공동체주의자들과 다른 점 === 기존 공동체주의자들은, 한 사회는 그 공동체의 전통으로부터 널리 공유되는 가치를,[* 단 이 가치는 인간 존재를 위해 좋은 선(善)이어야 한다.] 사회의 도덕적 인성 교육을 통해 '개인의 가치 선택과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체주의]]나 [[테러]]의 위험이 없는 한에서,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들이 '도덕적인 좋은 사람'이 되도록 전통적 도덕 가치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 공동체주의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샌델은 거꾸로 그 도덕적 가치의 본질[* 텔로스(telos; 목적)를 말하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았다.]은 무엇이며, 여러 본질 중 어떤 본질이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데 합당한가를 묻는다. 즉, 기존 공동체의 가치와 상관없이, 그 공동체의 선(공동선)을 어떻게 더 합당한 방향으로 '''개선'''하는가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여기서 '(기존) 공동체의 가치'와 '공동체의 선(공동선)'은 다르다. 공동체의 가치 중에는 공동체의 선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좋지 못한 면'도 있을 수 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를 통해서 여러 본질들을 찾아내고, 시민들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이런 본질 중 어떤 본질이 우리 사회의 도덕을 증진시키는지를 파악하여, 공동체의 공동선을 개선시킴과 동시에 '공동체의 불합리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소외시켜 계승하지 말자는 것이 샌델의 생각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샌델의 정치 철학은 도덕적 가치의 본질 파악과 그중 어떤 본질이 공동선을 개선시키는 데 보다 더 합당한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존 공동체주의자들이 '공동체의 불합리한 점마저 계승할 수 있는 다수의 가치'에 도덕적 함의를 두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chapter 30 의 내용.]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샌델은 '다원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스승 [[찰스 테일러(철학자)|찰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다원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가치 판단을 개인의 선택(자유주의)이나 공동체 다수의 선택(공동체주의)에'''만''' 맡겨둘 수는 없지 않느냐는 질문인 것이다. 샌델은 예를 들어, 언론의 자유를 빙자해서 나치 옹호의 집회를 여는 경우라도,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나치 옹호 집회를 막을 철학적 근거가 없다. 자유주의에서는 도덕적 가치 판단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남부에서 다수 백인들의 공동체의 가치에 반하여 소수 흑인들이 인권 집회를 하는 경우에,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지 말아야 되느냐고도 반문한다.(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 공동체주의 관점에서는 흑인 집회를 허용할 철학적 근거가 없다. 공동체주의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가치 판단을 '공동체 전통 가치'의 연장선에서 파악하며, 따라서 백인 공동체 '전통'의 가치를 가지고서 흑인이 요구하는 가치를 묵살할 수도 있는 것이 공동체주의의 관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왈저]]식 공동체주의)]) 이 같은 경우에는 도덕 가치의 본질 파악이 중요하며, 전자는 나치 집회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후자는 흑인 집회를 인정하는 쪽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샌델은 주장한다.[* 이념에는 항상 논리를 극단까지 끌고 나가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자유주의 이념을 극단으로 몰고 나가 무정부를 만들자고 주장할 수 있고, 공동체주의 이념을 극단으로 몰고 나가 개인은 공동체에 무조건 충성해야 된다는 전체주의를 주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자유주의에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 아무리 중립을 지키려 해도 언젠가는 도덕 가치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 오며, 공동체주의에서 공동체의 전통을 개인이 이어나간다고 봐도 언젠가는 그 공동체의 가치가 진짜로 좋은 것인지 파악해야만 할 시점이 온다. 이념을 이용한 극단적 논리가 시민들의 합리적인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허용하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샌델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케이스에 따라서 어떤 본질이 더 합당한가를 따져봐야 된다고 주장할 뿐이다. '어떤 본질이 '''보다 더''' 합당한가'에 따라서, 자유주의적 관점이 될 수도 있고, 공동체주의적 관점이 될 수도 있으며, 둘 다가 아닌 관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다만 2020년대 들어서 시작한 '능력주의 비판'에는 공동체주의적 논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예전과 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즉 구체적인 각각의 케이스에 대해서, 대립되는 각자의 입장이 가리키는 본질은 무엇인지 그 근거가 되는 원칙은 무엇인지를 오가며 서로의 도덕적 입장들을 충분히 검토하자는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정립한 원칙에 비추어 특수한 판단은 수정하기도 한다. 때로는 원칙을, 때로는 구체적 사안에 대한 판단과 직관을, 케이스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다. 이를 반성적 평형[* 존 롤스의 개념을 샌델이 차용한 것이다.]이라고 하며 '어떻게 우리 사회에 알맞는 도덕의 본질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샌델의 결론이 된다. 이에 따라, 한 사회의 도덕적 가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를 통해 '판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정치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소'가 샌델의 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해진다.[* [[한나 아렌트]]의 공공론과도 연관된다. 공중(public)을 강조했던 [[존 듀이]] 철학의 연장선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공동체의 전통을 중시하는 것'이 기존 공동체주의자들을 공동체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라면, 샌델은 이와는 별개로 '시민 참여와 공론의 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다.] 샌델은 '시장'가치가 이러한 '공론의 장'을 침범하고 있으며, 우리의 도덕적 가치 판단을 시장(돈의 가치)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